Winter Sea

Dong-Ha Min

겨울 바다
가슴 속까지 차갑게 하는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머리칼을 흩날리며 겨울
바닷가에 서서 멀리 바위에 부서지는 흰 파도를 마냥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취를 느낍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만약
바닷가가 아니고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 입니다.

나는 몇 주 전 한 일간지에 보도된 조난선박의 선원 구조 기사를 매우 관심
있게 읽어 보았습니다. 완도 근해에서 꽃게잡이 어선이 컨테이너 운반선과
정면 충돌해서 전복되었고, 선원중 일부가 뒤집어진 배 밑바닥에 갇혀있다가
11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 같이 쓰여진
기사였습니다. 바다에서 배들이 조난당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축구장
보다도 커다란 배들도 큰 바다의 겨울 폭풍에는 낙엽과 같은 신세가 되곤
합니다. 자연의 어마어마한 힘에 희생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움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실수로 많은 인명을
바다에 잃는 경우를 보면, 나는 분노와 허탈함이 앞섭니다.

몇 해 전 북대서양에서 연구선을 타고 항해한 일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출발해서 스페인 앞의 아조레스 섬에 기항했다가 아일랜드, 아이슬랜드와
그린랜드를 거쳐 캐나다 동부로 돌아온, 두 달에 걸친 긴 항해였습니다.
배에서는 보통 화재/조난대비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는데, 이 때는 특별히
찬 바닷물에 빠지는 경우에 대비해서 두꺼운 고무로 된 구명복을 발끝부터
머리까지 뒤집어 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찬물에 구명복을 입지 않고 빠지는
경우, ’50:50의 법칙’이라는 것이 적용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화씨 50도
(섭씨 약10도)의 물에 빠져 50야드(약 45 미터)를 살아서 헤엄쳐 갈 수
있는 확률은 50%라는 것입니다. 섭씨 10도라면 얼지도 않고, 냉장고 보다도
따뜻한 온도인데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사람이 물에 빠지면 대부분 익사가 아니라 동사로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섭씨 10도는 여름철 그늘진
깊은 계곡에서 시냇물에 발을 담구었을 때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이
아프게 하며 발의 감각을 잃게 만드는 온도이기도 합니다. 나는 사고 직후
꽃게잡이 어선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튕겨나간 사람들보다 이런
면에서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2월 남해
서부의 바닷물 표층 온도가 10-12도 정도 되니, 튕겨나간 사람들은 부상을
안 입었어도 곧 의식을 잃고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어 갔을겁니다.

사고가 난 꽃게잡이 어선은 해가 아직도 중천에 떠있는 오후 3시에
컨테이너선과 정면 충돌했습니다. 나는 이 두 배가 서로 보지 못한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시간이면 서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는 자동차와 달라서
가까운 거리에서는 보고도 급정거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주변의 물체와
배 밑바닥의 수심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어있습니다. 큰 배와 작은 배가
충돌하면 큰 배가 더 중한 법적 책임을 진다고 들었습니다. 더 많은 장비와
인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례대로라면 이 시간 컨테이너선의
함교 (브릿지)에는 2등 항해사와 당직 갑판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당직 시간동안 항해 뿐 아니라 레이더와 망원경으로 주변을 끊임없이 확인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사 꽃게잡이 어선에 레이더가 없고, 모두 딴데
한눈을 팔고 있었어도, 컨테이너선의 항해사는 레이더로 이 어선의 항적을
보고 진행방향과 속도를 미리 계산해서 피해가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선이나 컨테이너선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손 쓸 시간이 없었다면 모르지만,
양쪽 선박의 근무태만으로 빚어진 사고라면 인명,재산 피해에 대한 책임이
매우 커지게 될 겁니다. 아무리 보상을 잘받아도 희생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79톤짜리 어선이 3100톤짜리 컨테이너 운반선과 정면 충돌했는데,
선체가 갈갈이 찢겨 바로 가라앉지 않고 뒤집혀서 오랫동안 떠 있을 수
있었던 데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두 배의 중량 차이는 내가 마치
달려오는 어미 코끼리와 정면으로 부딛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연안역이니까 두 배가 속도를 줄여서 항해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
피해로 끝이 났겠지요. 뒤집힌 배에 갖힌 선원들은 망치로 선체를 두드리며
구조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지난 여름 러시아의
바렌츠해에 침몰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츠호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망치로
선체를 두드리며 구조요청을 하다가 허망하게 추위 속에서 질식해 숨져간
기억이 겹쳐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꽃게잡이 어선에 갇혀있던 정말로
운이 좋은 이 선원들은 결국 용접 절단으로 배 밑창에 구멍을 뚫은 해경
구조대에 의해 모두 살아 돌아왔습니다. 살아남은 사람과 구해낸 이들에게는
정말로 기적과 같은 기쁜 일이었을겁니다. 그러나 이 신문 기사에는 같이
충돌한 컨테이너선의 선원들이 꽃게잡이 어선의 선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해경이 반나절이 지나 도착할 때까지 무슨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부디 이들이 꺼져가는 생명을 뒤로하고 그냥 자기 목적지로
돌아간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2000년 연말에 해본 겨울 바다 생각이었습니다.
Last Update: 12/2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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