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mi Doggebi

Dong-Ha Min

멀미 도깨비

무언가를 타고 움직일 때 우리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운 반응을 보이는 것을 흔히 멀미라 부른다. 세상에 차멀미, 비행기멀미, 심지어는 흔들다리 멀미까지 있다지만, 배멀미 만큼 고약한 것이 또 있을까. 배에서는 3차원으로 흔들어대는 요동에다가 시각, 후각, 청각을 고루고루 자극하는 요소들이 더해지고 그곳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멀미에 무한정 면역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드물고, 베테랑 선원들도 풍랑이 심하고 몸 컨디션이 나쁘면 결국은 멀미로 고생을 하며 스타일을 구기고 만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항상 긴장해야 한다. 멀미 도깨비가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이다. 이 도깨비에게 걸리면, 배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계획한 일을 모두 포기하고 지옥 근처까지 순례를 돌고 오는 곤욕을 치뤄야 한다. 배에 오르기도 전부터, “나는 절대로 멀미 안해!” 하며 큰소리 치는 사람은, 정말 면역이 ‘쎈’ 사람이거나, 아니면 십중팔구는 진짜 바다에 아직 한 번도 나가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멀미 도깨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항해 기간 내내 특별 관찰 대상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멀미 도깨비들은 자신만만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기관실 엔진 소리와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신호로 서로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맛배기로 흘려놓은 기름 냄새에 처음부터 최면이 걸려서 비몽사몽하는 사람들을 선착순으로 접수하며 쉬운 사냥을 더 즐기는 것이다. 이때문에 배 떠날 때에는 도깨비들도 선원들 만큼이나 바쁘게 움직인다.


멀미 도깨비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몇가지 유형이 있다. 배가 아직 부두에 묶여 있는데도 머리가 아프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도깨비들한테까지 소문을 퍼뜨리는 이, 잘 먹지도 않으면서 화장실도 안가고 버텨서 도깨비 의사에게 소화불량 진단을 받거나, 피곤하다고 선실에만 쳐박혀 지내며 마음 약한 도깨비들이 문병 오게 만드는 이, 음식만 보면 미간이 찡그려져서 남은 음식까지 도깨비가 억지로 먹게 만들고,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면 안나와 줄서있던 도깨비 열받게 만드는 이, 꼭 죄는 바지 입고 멋을 부려 도깨비가 시샘부리게 하는 이, 바람 불어 추운데도 아닌 척하고 벗고 다니며 도깨비를 심지어 유혹하는 이, 바다의 리듬을 못타고 자꾸만 어디에 부딪히며 자고 있는 비번 도깨비까지 깨우는 이, 한번 말한 것 잊어먹고 자꾸만 물어봐서 보다 못한 도깨비가 직접 가르쳐주러 오게 하는 이… 이런 사람들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일단 멀미 도깨비에게 한번 잡히면 몇날 몇밤을 고깃밥을 주며 고시레를 외쳐야 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별 부적을 귀 뒤에 붙이고 효험이 있다는 약을 찾아 먹으며 아무리 근신을 해도, 언제 다시 눈에 생기가 돌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멀미 도깨비가 싫어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들에게 하등의 도움이 안되는 이들이며, 대개는 주변 사람들까지 멀미 도깨비의 주문에서 풀어내가는 고약한 이들이다. 이 인간들은 잘 먹고 잘 떠들고 잠도 잘 잘 뿐 아니라 심지어 일도 잘하며, 먹는대로 꼬박꼬박 화장실도 잘 가는 류에 속하여 도무지 멀미 도깨비의 마음에 들지않는 그룹이다. 고깃밥을 주기는 커녕 간식도 사양하는 법이 없어 도깨비들을 정말 속상하게 한다. 한 곳에 쳐박혀 있지를 않고 이곳 저곳 쏘다니며 떠들고 바람을 쐬고 다니기 때문에 도무지 주문을 걸 기회가 없다. 이 인간들 때문에 도깨비들은 도리어 용왕께 고사를 지낼 형편이 되는 것이다.


심술이 난 멀미 도깨비들이 용왕께 고사를 지내 풍랑이 일기 시작하면, 배 안에서는 도깨비들의 푸닥거리로 온갖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신들린 배는 정신없이 벌벌 떨기 시작하며, 배에 탄 사람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급기야는 겁에 질려 헛것을 보며 웩웩거리게 마련이다. 불쌍한 심청은 이 도깨비 심술에 놀아난 뱃사람들에 의해 인당수에 몸을 던져야만 했다. 그러나 멀미 도깨비가 질색을 하는 인간들은 이런 때에도, 식당에서 흰 눈을 멀겋게 뜨고 멍청히 앉아 있거나 좁은 배 안에서 길을 잃고 돌아다니다가 도깨비 최면에 걸리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 일에 정신이 팔려, 눈앞에서 굿을 하는 멀미 도깨비를 못보거나, 바빠서 보고도 아는 척을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멀미 도깨비들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저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엔터테이닝을 하는데 무서워 하기는 커녕 면전에서 무시하는 인간들을 보면 욕을 하며 떠나간다. 상종을 안하는 편이 자기들 생업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도깨비를 모르고 나를 모르면 백전 백패, 멀미 벼락을 맞지만, 나를 알고 도깨비를 알면 얼마든지 멀미를 피해갈 수 있는 길이 보이게 된다. 멀미야, 멀미야, 뭐하~니? 저~기 숨어있는 도깨비에게나 가서 철썩 붙어버리거라. bon voyage!


Last Update: 12/2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