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Years Ago

Dong-Ha Min



24년 전 겨울…

1975년 12월의 어느 날, 붉은 표식 깃발을 안테나에 매단 여러 대의
차량들이 L.A.를 출발해 5번 고속도로를 따라 샌디에고로 달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왜건의 트렁크 뒷자리에는 차멀미로 얼굴이 하얗게
되어서도 뒷 창문 밖으로 두 발을 삐죽 내밀고 흔들며 (뒤에 따라오는
일행이 현기증나게 애타하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밀려가는
자동차들과 웅장한 고속도로를 보면서 감탄하던 한 소년이 있었다.

기독교의 씨앗이라는 뜻의 한국 성아 어린이 합창단은 두명의 소년을
포함한 24명의 어린이로 구성되어 미주 순회 연주여행 중이었다.
이들은 두번째 기착지인 샌디에고에 도착하여, 약 1년여 전에 창립된
어느 한국 교회에서 교인들의 따뜻한 대접을 받으며 여장을 풀고
연주 일정을 시작하였다. 나지막하면서도 넓은 교회 마루에 모인
교인들과 함께 성탄예배를 드리고, 아름다운 노래와 무용을 선사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밑에 쌓인 푸짐한 선물들은
한국에서 온 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 교회의 목사님과 교인들의 도움으로 틈틈이 샌디에고 관광도
했는데, 와일드 애니멀 파크와 티화나 시장 구경은 모두에게 독특하고
이국적인 샌디에고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너무나도 짙게 깔린
밤안개도 이들에게는 두려우면서도 신비한 경험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92년, 두 꼬마 소년 중 하나가 이제는 청년으로
성장하여 해양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샌디에고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곧 그와 그의 가족은 아는 분의 권유로 샌디에고 연합장로 교회를
찾게된다.

이 교회에 17년 만에 다시 오는 것임을 깨닫기 까지는 나에게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그 감격을
가슴에 간직하고 성가대 봉사를 시작했다. 1993년 겨울에는 또 한번
예상치 않았던 놀라운 만남이 있었다. 1975년 성아합창단 지휘자로
샌디에고에 함께 오셨던 서문욱 선생님께서 갑자기 우리 교회 성가대
임시 객원 지휘자로 나타나신 일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후 한번도
못뵈었던 선생님과 감격적인 해후를 했고, 특별한 기쁨을 나누며 1993년
성탄 축하 찬양을 드렸다. 이렇게 해서 선생님과 나는 이 교회에서 18년을
사이에 두고 만나 성탄 축하 찬양을 두번 같이 드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1975년 샌디에고 연주 여행중 아직도 가슴에 저린 감동으로 남는 사건이
하나 있다. 우리는 샌디에고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때에, 극진하게 대접해
주셨던 한 목사님께서 아주 중한 병을 얻어 곧 수술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도 놀란 우리들은 공항 대합실에 모두 꿇어앉아 그 목사님을
위해 울면서 기도를 드렸다. 모두 너무나 간절히 하나님께 떼를 쓰다시피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이 후 우리는 다른 지역을 여행하던 중에 그 목사님이
회복되어 퇴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이 사건은
나의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새겨져 남았다. 그런데, 그 때 그 목사님이 바로
우리 교회의 강진상 초대 목사님이시라는 것과, 그 후 강 목사님은 오렌지
카운티로 이사하시고 여러 해 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내가 샌디에고에
온 후로도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서울 장로 성가단이 우리 교회에서 연주
했던 1994년, 아버지와 같이 오셨던 어머니께서는 친교실에 걸려있는
‘강진상 관’ 현판을 보시고는 이 분이 바로 1975년 샌디에고 연주 여행 때
우리가 방문했던 교회의 목사님이라고 확인해 주시며 놀라와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당시 성아 합창단 인솔 총무로 샌디에고에 같이 오셨었다.)
“지금 그 사람 얼굴과 이름은 잊었지만…”하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나도 강목사님의 얼굴과 이름은 잊고 살았지만, 그 분의 따뜻한 친절과
그 때의 간절한 기도는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우리 교회에는 1975년 당시부터의 교인들이 여러 분 계신다. 그 중 박효정
권사님은 우리가 한복을 입고 발보아파크에서 합창하던 일을 기억해
주셨고, 강의열 장로님과 강인옥 사모님은 교회 20년사 책자에 성아 합창단
방문을 기록해 놓으셨다. 내가 그 때 민박했던 댁의 분들이 우리 교회에
아직 계셔서 매주 뵙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의 기억이 확실치 않아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나는 이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샌디에고를 다시 떠날 때가 되었다. 이 교회에
와서 나와 내 아내는 처음으로 어느 장로, 권사의 아들, 딸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를 책임지는’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집사가 되었다.
세살 꼬마로 따라온 큰 딸 상희는 주일학교와 한글학교에서 좋은 신앙교육
안에서 아름답게 성장했고, 어려운 중에서 교회 여러분의 따뜻한 기도와
축복 속에서 태어난 아들 규희는 여러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두 살
장난꾸러기로 자라고 있다. 하나님께서 또 언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샌디에고로 다시 보내 주실 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샌디에고와의 아름다운
두번째 인연을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1999 샌디에고 한인 연합 장로교회 25주년 기념책자)